더글러스 맥아더는 1880년 1월 26일 아칸소 주 리틀록의 병영에서 미군 장군 아서 맥아더 주니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스코틀랜드계 이주민 출신으로,[1] 할아버지는 위스콘신 주의 주지사였고, 아버지 아서 맥아더 주니어는 남북전쟁 때 명예훈장을 받았고 미국-스페인 전쟁과 미국-필리핀 전쟁에 참전했으며 1900년 필리핀의 군정 총독으로 재임했다. 또한 핑키는 1852년생으로 버지니아 주 노퍽의 저명한 가문 출신이었으며, 그녀의 형제 중 2명은 남북전쟁 때 아메리카 연합국측에서 참전하였다.
맥아더는 미 육군 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에 입교했다.
93명의 졸업생 중 가장 높은 졸업성적인 2470점 만점에 2424.12점을 기록하며 여단장생도 겸 수석졸업 생도로 졸업했다. 이는 웨스트포인트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점수의 졸업생인데, 웨스트포인트 역사상 그보다 높은 졸업 성적을 기록한 이는 단 2명 뿐이었다.
미국의 역사에서 많은 장군들이 존재하지만
특히 한국에게 많은 기억을 남긴 장군은 맥아더 장군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맥아더의 일생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전쟁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가 얼마나 많은 상급자와의 갈등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단지 맥아더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상급자와의 갈등을 빚어냈다면
절대로 훌륭한 인물이라고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출신도 능력도 뛰어났던 맥아더는 현장 지휘관으로써의 능력도 대단했다
그랬던 그는 항상 마찰이 많아던 인물이었다
그 중에는 유명한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는 패튼 장군과의 대립도 유명하다
맥아더의 마지막은 역시 대통령과의 대립이었다
한국전쟁의 판도를 바꾼 맥아더는 한국의 완전한 영토복구를 위해서 백두산, 압록강까지의 진격을 바랬지만
중국의 개입이 본격적으로 될 경우를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이 그의 결정을 막아섰다
한국의 완전한 결합을 바랬던 것도 미국이고 그 결합에 방해가 되었던 것 역시 미국인 셈이다
그런 그가 한국 육군사관학교의 대문에 걸리는 것은 나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서 대부분을 차지한
그들이 생각하는 충성심과는 전혀 결이 맞지 않는 인물인 것은 명백하다
박정희가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든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순신은 나라의 영웅이기 이전에 국민들을 위해 존재했던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 역시
당시 정권
선조와는 많은 대립을 야기했다
이순신과 맥아더
그들을 존경하자고 외치는 이들은
자기 정권의 존립을 위해서 영웅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들이 존재했던 이유는 분명
국민, 백성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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